Thursday, November 30, 2006

[글로벌 인생] 금발의 여심 잡은 ‘발로 뛴 패기’

뉴스 > 조선일보 2006-11-29 03:05
[글로벌 인생] 금발의 여심 잡은 ‘발로 뛴 패기’
[3]루마니아 미용용품 시장 평정한 김병수씨
미용실 일일이 찾아다니며 한국産 네일아트 제품 홍보
끈질긴 설득에 대부분 감동 미용실 절반 1년만에 ‘단골’

루마니아의 미용업계를 휘어잡은 한국 젊은이가 있다. 2004년 여름, 묵직한 배낭을 짊어진 29세 청년이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를 밟았다. 그의 배낭엔 한국상품 카탈로그로 가득차 있었다. 루마니아의 미(未)개척 시장을 뚫기 위해 김병수(31·믹마켓 대표)씨가 투입된 것이다. 
당시 중소기업청의 ‘해외시장 개척요원’으로 파견된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그는 한국에서 공수해온 카탈로그를 보여주면서 루마니아 시장 공략법을 연구했다. 주말에는 시내 구석구석을 누볐다. 특히 거리를 오가는 여성들을 유심히 살폈다.  
“루마니아 여성들은 다른 유럽 국가보다 외모를 예쁘게 꾸미는 데 관심이 많더군요.”  
백화점이나 시장에는 유럽산 미용제품이 많긴 했지만, 한국산처럼 특이하고 다양하진 못했다. 그는 무릎을 쳤다. ‘루마니아의 여심(女心)을 공략하자!’ 
▲ 김병수 대표(오른쪽)가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 있는‘믹마켓’사무실에서 여성고객들에게 직접 네일아트 서비스를 해주고 있다/믹마켓 제공
2005년 2월, 한국으로 돌아와 루마니아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미용제품을 찾았다. 우연히 들른 중소기업 제품 박람회에서 손톱에 예쁜 문양을 스탬프처럼 찍을 수 있는 특이한 네일아트 제품을 봤다. ‘이거다!’ 싶었다. 그는 네일아트 제품을 들고 무작정 루마니아로 날아갔다.  
2005년 7월, 루마니아 지인의 도움을 얻어서 한국상품 유통업체인 ‘믹마켓’을 세웠다. 하지만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한 TV홈쇼핑 채널에 5000유로어치 물건 계약을 맺고 방송을 내보냈다. 하지만 눈으로 보고 물건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루마니아 사람들 성격 때문에 매출은 미미했다. 재고는 쌓여만 갔고 자금 압박에 시달렸다.  
그때부터 그는 제품을 들고 시내의 미용실을 찾아 다녔다.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운 겨울에 버스와 전차, 지하철을 타고 몇 시간씩 헤맸다. ‘싸구려 중국산은 필요 없다’며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태극기를 보여주면서 한국 제품은 값싸고 품질이 좋다고 끈질기게 설득했다. 그러기를 몇 주. 낯선 동양인이 장사하는 것이 신기한 듯 미용실 사장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계약이 몰려들었고, 시내 미용실 70여 곳에 납품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네일아트 제품은 지금 부쿠레슈티에서 영업하는 미용실의 절반을 장악하면서 명물이 됐다.  
자신감을 얻은 그는 겁없이 유명 대형 백화점인 ‘부쿠르 오보르’의 문을 두드렸다. 놀랍게도 백화점 관계자는 “입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고 했다. 결국 지난 7월 백화점에 입점(入店)하는 데 성공했다. 루마니아 시장 진출에 나선 지 꼭 1년 만의 일이다. 한 달 뒤인 8월엔 유명한 ‘빅베르체니’ 백화점에도 매장을 열었다.  
아직은 한 달 매출이 500만~600만원 정도로 걸음마 단계다. 15평짜리 아파트에서 먹고 자면서 영업하고, 자가용이 없어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면서 물건을 팔러 다니는 뚜벅이 신세다.  
“루마니아는 인구가 2100만명이나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 진출한 기업은 많지 않아요. 그만큼 성장 가능성이 큰 셈이죠.”   
 
이경은기자 diva@chosun.com